<생각하는 기계>를 읽고

<생각하는 기계>를 읽고

들어가며

요즘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인공지능 입니다. 주변과의 대화 뿐만 아니라 뉴스레터, 미디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내가 AI를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 아닌지에 대한 FOMO(Fear Of Missing Out)를 더욱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몇 개월간 FOMO에 이끌려 AI를 열심히 사용해보다가도 AI가 이렇게 화두가 되기 이전에 내가 즐겼던 독서나 운동이 더 하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마치 시험기간에는 시험 공부 외의 모든 것이 유독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심리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떠오른 책이 젠슨 황 자서전이었습니다. 작년에 친구가 젠슨 황 자서전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 머리 한 켠에 남겨두었었습니다. 그래서 집 주변 도서관에 찾아보니 마침 바로 대출 가능한 상태라 바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기대했던 것은 GPU, 메모리 등 AI 인프라와 관련된 산업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은 불확실한 것과 잘 모르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냥 FOMO만 느낄 것이 아니라 AI를 이루는 근간들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고 나면 두려움은 줄어들고 미래에 대해 나만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젠슨 황이 직접 쓴 자서전이 아니라 전문 자서전 작가가 몇 년간 젠슨 황과 엔비디아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엮은 책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서도 젠슨 황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이 알았다는 생각보다는 한 기업의 탄생과 번영에 대해서 한 편의 영화를 본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특히나 아직 엔비디아는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써 정상에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 자서전이 단지 과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출발점이라는 점에서도 읽는 내내 들뜬 마음이었습니다.

책에서 남겨두고 싶은 내용

이 리뷰에서 남기고 싶은 책의 내용은 대부분 엔비디아 창업자로서의 젠슨 황에 대해 상상해볼 때 도움이 되는 특징들에 대한 것들입니다.

  • 엔비디아를 현재와 같은 선도기업으로 도약시킨 젠슨 황의 결단
    • 2012년 이미지넷 대회에서 알렉스넷 등장하며 우승 → 우승 이유 중 하나는 엔비디아 GPU를 이용한 데이터 학습 훈련이었다는 것 → 며칠 만에 딥러닝 완료 →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라는 말을 젠슨 황이 하기 시작함 → AI 반도체 기업으로 전면적 사업 전략 전환 → AI용 GPU 시장 선점
  • 엔비디아 제품들의 리드 타임은 경쟁사들이 몇 개월이 걸리는 작업을 몇 주로 단축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는 젠슨이 ‘광속’이라고 부르는 일정 관리 기법을 활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관리 개념을 마치 종교적 교리처럼 직원들에게 주입시켰다. 책의 저자가 인터뷰 도중 모든 직원들이 적어도 한 번씩 ‘광속’을 언급했을 정도다. 여기서 광속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예산이 무제한일 때 어떤 작업이 이론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완료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 관리자들은 달성 불가능한 기준점을 토대로 현실적이면서도 상당히 빠른 납기 일정을 역산해낼 수 있었다. 엔비디아의 관리자 중 한 명인 데브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이 방법은 오히려 부담을 덜어줘요. 무엇이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그 한계를 이해하고 나면, 경쟁사들도 그보다 더 빠를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죠.”
  • 젠슨은 회사 곳곳을 활보하며 종종 주니어 직원들을 붙잡고 그들이 진행하는 작업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젠슨은 자료 없이 한 번에 두 시간 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발표 때마다 반복해서 ‘광속 일정 관리의 중요성’, ‘동화 같은 제로-빌리언 달러 시장 개척’, ‘점진적으로 스며드는 관료주의의 위험’에 대해 강조했다.
  • 엔비디아가 성장했지만 젠슨 황은 기민하고 민첩한 기업 구조를 유지했다. 고정된 부서나 위계가 없었다. 본인 외에 다른 C레벨 직책도 없었고 명확한 2인자도 없었다. 비서실장 조차 두지 않았다. 대신 30명 이상이 직접 그에게 보고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부사장’이라는 포괄적인 직함 아래 유동적인 역할을 맡았다.
  • 젠슨은 경영진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갑자기 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 젠슨은 자주 스스로의 말을 모순되게 만들었고 때로는 한 번의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상반된 관점을 동시에 내놓기도 했다. 그는 단지 아이디어를 양쪽에서 모두 공격하기를 좋아했을 뿐이었다. 측근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 되려는 게 아닙니다. 메세지를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그는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처리하려는 거에요. 그리고 일시적으로라도 모순된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겁니다.” 겉보기에는 확고한 선언처럼 보이는 말도, 사실은 젠슨이 그저 자신의 생각을 소리 내 정리하고 있는 것인 경우가 많았다.
  • 새벽 4시, 젠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을 시작했다. 그는 항상 가장 중요한 장기 프로젝트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프로젝트를 처리해 두면, 하루 동안 다른 일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날은 헛되이 보낸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 컴퓨터 과학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두 영역(병렬처리 컴퓨팅과 신경망 학습)이 만나는 지점에서 엔비디아의 혁신이 생겨났다.

그리고 책 문구를 직접 인용하지는 않겠지만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엔비디아의 위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공유하고 싶습니다. 엔비디아는 창업 후 지금까지 총 3번 정도의 파산 위기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첫 번째 위기였던 NV2 칩을 절반 쯤 개발했을 때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가장 흥미진진했습니다. 엔비디아가 NV1 칩으로 창업한 뒤 NV2 칩을 절반 쯤 개발했을 때에는, 오히려 경쟁사들에 비해 원가 비율이 지나치게 높고 유일한 대형 고객사였던 세가(SEGA) 또한 엔비디아의 그래픽 처리 방식은 맞지 않다고 했을 때였습니다. 당시는 9개월 정도만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9개월 안에 회사를 살릴 새로운 칩을 판매해야 했고, 이 시점에는 70%의 인원 또한 감축했었습니다. 보통 팹리스 회사들이 최소 2년 정도의 제품 개발 주기를 가지는 것에 비하면 불가능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엔비디아가 당시에 선택한 도박은 에뮬레이터를 통해 시제품 단계를 생략하고 설계 단에서 ‘테이프아웃’을 하고 바로 파운드리에 10만 유닛 주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6개월만에 새로운 칩을 출시했고 이것이 RIVA 128 칩입니다. 이를 계기로 다른 칩 회사들이 18~24개월 주기로 신제품을 낼 때 엔비디아는 6개월 주기로 그래픽 카드를 출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RIVA 128 칩은 출시 4개월만에 100만 대가 팔리며 엔비디아를 살려냅니다. 물론 RIVA 128 칩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저절로 잘 팔린 것은 아닙니다. 엔비디아가 성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임 개발자들과 그런 게임을 찾아서 하는 게임광들을 찾아내서 그들에게 팔아낸 결과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결과적으로 쉬워 보이는 일을 돋보기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쉽지 않고 오히려 기적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세상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동기를 부여받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이곳에 남기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가며

엔비디아라는 회사 그리고 젠슨 황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한 분이라면 이 책을 꼭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리고 엔비디아가 설립된 1993년 즈음에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던 분이라면 그 시대의 분위기와 엔비디아의 생존기가 더욱더 절절하게 와닿을 것 같습니다.

책을 다 읽고 독후감을 쓰며 저의 머리와 마음에 남는 이야기들을 돌이켜보면 여러가지 건조한 사실 관계들이 많지만 젠슨이라는 사람을 느끼게 해주는 지점도 기억에 남습니다. 젠슨은 주니어 전국대회에서 3등을 할 정도로 탁구를 매우 잘 친다는 점, 학생 때 미국 식당 Denny’s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엔비디아를 창업할 때나 지금까지도 주기적으로 Denny’s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먹는다는 점, 1980년대부터 실리콘 밸리에서 첨단 컴퓨팅 기술에 노출되어 있었던 환경, 젠슨의 커리어는 칩 엔지니어가 아닌 칩 PM이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와닿는 지점들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게 되는 분들도 각자의 필터로 좋은 영향력을 받는 지점들을 찾아내는 독서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Minyoung

Minyoung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