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의 기술>을 읽고

들어가며
이번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도 한국인으로서 미국 대선의 결과를 제대로 가늠한다는 게 힘들다고는 생각했었습니다. 그래도 관심을 두고 살펴보는데, 전통 언론에서 보도하는 내용과 SNS에서 얘기되는 내용들이 많이 다른 것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정보처를 믿어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트럼프의 당선으로 대선 결과가 나오자,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정보 조각들을 모아서는 안 되고, 옛날에 쓰인 책을 통해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보니 꽤 오래전부터 유명했던, 트럼프가 직접 1987년에 쓴 <거래의 기술>이 가장 적합해 보였습니다.
책에 대하여
이 책은 간략하게 트럼프의 어린 시절을 말한 뒤, 뉴욕시 퀸스와 브루클린에서 주택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떠나 본인은 맨해튼에서 굵직한 부동산 사업을 일으킨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이한 부분은, 이 책을 쓰던 시점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죽 나열해 놓은 부분도 있는데, 하루 평균 50회~100회 정도의 통화를 한다는 그의 말을 과장으로 받아들이더라도 매 순간 전화를 붙들고 있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 마라라고, 이바나, 가족 모임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자서전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꽤 많은 부분에 밑줄을 치게 되었습니다. 트럼프의 성격을 엿볼 수 있거나 거래할 때 명심해야겠다는 부분들을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함입니다. 그런 부분 중 몇 개를 이 글에서도 기록해두려 합니다.
- (수많은 투자 제의를 받는 상황에서 말하는 그가 경험상 배운 몇 가지) 첫 번째, 서류상으로 아무리 좋게 보이더라도 우선은 자신의 판단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편이 돈을 벌기가 쉽지, 모르는 분야는 어렵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때에 따라서는 투자하지 않는 게 최선의 투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 나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능력은 천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유전인 셈이다. 똑똑해야만 거래를 잘 성사시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브로커로서의 본능에 좌우된다.
- 크게 생각하라 - 카지노는 호텔보다 5배나 돈을 벌 수 있다. 크게 생각하기 위한 기본 요소의 하나는 집중력이다. 이 능력은 꽤 성공한 기업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집중적이고 충동적이며 외곬으로 생각하며 때로는 거의 편집광적이다. 그러나 이 모든 특성이 그들의 사업으로 집중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지는 국면에서도 이들 성공한 사람들은 외골수적인 면에 의해 오히려 도움을 받는다.
- 나는 부정적 사고의 능력을 믿고 있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있으면 막상 일이 닥치더라도 견뎌낼 수가 있다.
- 나는 거래가 성사되더라도 최소한 대여섯 가지의 다른 대안들을 동원해서 일을 추진시킨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우더라도 무엇인가 복병이 될 만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 그럴듯한 시장 조사는 믿지 않는다. 언제나 스스로 조사를 해서 결론을 낼 뿐이다. 나는 결론을 내기 전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를 좋아한다.
- 거래를 할 때 가장 나쁜 자세는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절망하는 일이다. 그런 태도를 보이면 상대방은 전의에 불타게 되고 당신은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서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때 거래는 가장 잘 이루어 진다.
- 부동산 거래에서 가장 잘못된 인식은 입지에 따라 성공이 좌우된다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입지가 아니라 최선의 거래이다.
- 아무리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도 본인 차고에서만 노래를 부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남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동요를 일으키게 해야 한다.
- 나는 기자들이 곤란한 질문을 던지더라도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관점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대답을 하려고 노력한다.
- 나는 내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특별히 잘해주는데 나를 이용하거나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치열하게 대항한다. 이길 가망이 없다고 해도 결과에 관계없이 노력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끝내 이겼다.
- 나는 아버지로부터 동전 한 푼이라도 일일이 챙겨야 한다고 배웠다. 동전은 곧 지폐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에도(이미 빌리어네어가 된) 나는 청부업자가 부당하게 액수를 늘렸다고 생각되면 5,000달러라 할지라도 전화를 걸어 불평을 하곤 한다. “만약 내가 1만 달러를 절약하기 위해 25센트짜리 전화를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때는 사업을 접어야죠.”라고 대답한다.
- 관심을 집중하지 않으면 조그만 일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 내게 돈은 큰 자극이 되지 않는다. 다만 성공하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진정한 재미는 게임을 한다는 사실이다.
나가며
이 책을 찾아볼 때부터 목적은, 트럼프라는 사람의 본질과 최대한 가까운 면을 볼 수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 목적을 충족하는 책입니다. 부수적으로,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가 2016년에 개정판에 대한 서문으로 남긴 글을 살펴보면 한창 클린턴과 당시 미국 대선을 치르고 있는 와중이었습니다. 2024년의 트럼프 재당선과 맞물려서, 8년이란 시간이 무색하게 데칼코마니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번역가도 그 당시, 미국 주류는 클린턴을 지지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기세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남겨두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미래는 함부로 예측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을 또 얻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오직 사업가로서의 트럼프를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본인이 쓴 자서전이기 때문에 그에 관한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트럼프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 정의하는지 살펴볼 수 있어서 이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 있는 트럼프는 정치도 하나의 큰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즐길 사람 입니다. 타고난 승부사이고,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동기 부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그가 성취해 낸 결과들을 조금 더 알게 되었으니, 트럼프가 앞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에 그 배경에는 그의 성격과 경험이 어떻게 녹아나 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가 이끌어갈 앞으로의 4년을 그 사람 개인을 좀 더 이해한 채로 관찰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