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의 종말>을 읽고

들어가며
한 번씩 체력이나 건강이 20대 초반과는 다르다고 느껴질 때가 있고, 무엇보다 내가 자유를 위해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건강을 잃고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무엇을 챙겨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갈수록 진지해졌습니다. 최근에는, 기존에 하고 있는 운동이나 규칙적인 생활 이외에 체력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릴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주변에 건강과 즐거운 삶에 대해 저보다 훨씬 앞서가 있는 친구에게 챙겨 먹는 영양제에 관해 물어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교수에 대해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유명인이었고, 그의 하루 루틴과 챙겨 먹는 영양제 종류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먹는다는 영양제를 무작정 온라인 쇼핑카트에 담았다가 결제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이걸 먹기 시작하면 몇십 년 먹게 될 수도 있는데 이 사람이 왜 이걸 먹고 있는 건지는 조금 더 알아보고 먹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가 쓴 책이 눈에 들어와 이 책을 다 읽고서도 이 영양제들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사보자는 결심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에 대하여
저는 사실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에 초점을 맞추다가 이 책을 읽게 되어서인지 이 책의 제목 <노화의 종말>이 그렇게 파격적인 표현이라고 느끼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책상에 놓여있는 걸 본 지인이 젊은 나이에 왜 ‘노화’에 벌써 관심을 가지는지 신기해했던 게 새삼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이 지인의 질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인간이면 당연히 노화를 겪고, 그 일이 닥치지 않으면 걱정할 필요 없는(또는 걱정해도 소용없는) 현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신선했던 건, 저자는 노화에 대한 이러한 관점이 문제라고 여기며 ‘노화는 질병’이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우리가 1900년대에만 해도 암은 치유할 수 없고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두려운 존재였지만, 암의 발생 원인을 발견하고 난 이후로는 암은 질병이고, 암의 기저 원인을 제거하거나 표적 치료하는 방식 등으로 암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본인의 연구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 연구를 통해 노화가 발생하는 원인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암의 사례처럼, 노화도 발병 원인이 밝혀질수록 더 이상 노화를 운명처럼 받아들일 게 아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점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노화를 질병으로 다루고, 이를 늦추거나 개선할 수 있는 여러 물질, 생활 양식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의 안정성 검증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이미 본인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 “50대도 30대처럼 활력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대학 교수님인 만큼 노화의 발생 원인을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도 책에 빠져들어 읽는 동안은 그 연결고리가 이해되는 듯했지만, 지금은 그 어려운 단어들과 세세한 인과관계가 다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핵심 메시지는 “노화는 정보의 상실”로 인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포로 이뤄져 있고 세포가 분열하면서 우리 몸의 구성에 필요한 여러 가지가 만들어지고,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분열하면 종양이나 암이 됩니다. 또 세포가 죽으면서 사라집니다. 세포는 DNA가 복제되면서 분열과 생장을 하게 되는데 DNA는 4가지 핵 염기로 이뤄진 ‘디지털 정보’ 코드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DNA는 우리가 학창 시절 생물 시간에도 배워서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정보인 ‘아날로그 정보’가 노화 원인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아날로그 정보는 ‘후성유전체’라고 하는, DNA나 세포, 효소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지시하고 몸의 상태나 환경에 따라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관리자 역할을 의미합니다. 이런 후성유전체 정보가 처음에는 제대로 작동하지만 살아가면서 우리 몸에서는 DNA가 끊길 일이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 염색체 46개 각각은 세포가 DNA를 복제할 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끊길 수 있게 되고 하루 동안 우리 몸에서 2조 번 넘게 끊기는 셈이 됩니다. 이런 일상뿐만 아니라 자연 방사선, 환경 화학물질, 엑스선 촬영, CT 촬영에도 DNA는 끊길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몸은 이런 DNA 끊김에 대응하여 후성 유전체가 DNA 수선 역할을 하고 있지만 DNA 끊김이 많아지면 후성유전체가 DNA 수선에 신경을 쓰느라 원래 하던 정상 세포들의 발현을 지시, 관리하지 못하는 수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포들은 엉뚱한 시점에 엉뚱한 세포로 분열하여 노화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간단하게 노화의 근본 원인에 대해 제가 이해한 내용을 설명해 보았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이러한 후성 유전체가 어떤 단백질에 작용해서 노화를 역행하거나 촉진하는지 여러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시각 자체가 참신했고 어느새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노화는 질병이라는 말에 설득되었습니다. 더 촘촘한 논리와 검증 과정이 궁금하신 분은 이 책을 읽어보시면 정말 재미있다고 느끼실 겁니다.
이 책을 읽기 잘했다고 느낀 또 다른 지점은, 책의 후반부에서 ‘장수’나 ‘노화의 종말’이 인간에게 과연 좋기만 한 일인지 도덕적, 사회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부분입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있고, 더 겸손해지고, 남아있을 자손을 위해 더 선한 일을 하게 되는 등의 선순환이 있다는 주장들을 우리는 한번쯤 들어보고 생각해보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화 연구를 비판하는 시각 중에는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지구의 자원을 소모하는 현재의 양상을 볼 때 인간이 더 오래 사는 것은 오히려 인류에게 종말을 불러일으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저도 저 개인만 생각할 때에는 활력 있고 건강한 삶을 만들고 싶어서 단순하게 장수를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였지만, 저자와 같이 이 분야의 전문가인 사람들은 이런 반대 주장과도 열심히 싸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매우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노화에 대한 시각은 어찌 보면 ‘진실’이라기 보다는 ‘의견’이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가 반대 주장에 대응해서 말하는 몇 가지 지점에는 확실히 공감되었습니다.
- 사람들은 시간이 더 많을 때 훨씬 더 인간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단순히 몇 분 또는 몇 시간 더 여유가 있을 때 주변에 긴급하게 아픈 사람을 더 잘 돌보고 관심을 가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다. 과연 몇 년의 시간이 더 생긴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더 인간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 단순히 아픈 사람의 수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의 수명을 늘리는 것은 사회가 한 사람에게 투자한 투자금에 대한 배당금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다. 퇴직 연령이 더 이른 나라들이 GDP가 더 낮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 수명을 연장하면 인구가 급증한다는 염려가 있는데, 우리가 “모든 죽음”을 지금 당장 멈춘다면 매일 약 15만 명씩 인구가 늘어날 것이다. 많은 것처럼 들리지만 이 속도라면 18년마다 10억 명씩 늘어날 것이다. 이 속도로는 지난 수십 년간 수십억 명이 늘어난 속도보다는 상당히 느릴 것이고, 현재 자연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가족 규모가 적어지는 현상을 통해 인구 증가는 충분히 상쇄될 것이다.
이렇게 노화 방지가 가져올 수 있는 ‘세월을 두려워하지 않는 활력’을 통해 인간 세상이 변화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저자는 무한 긍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인이 인류에 기여하는 방법이라 강하게 확신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연장선으로 저자는, 특정한 질병을 연구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이나 지원보다 노화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노화라는 질병에 투자되는 예산과 지원을 진지하게 더욱 늘려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이해관계를 위한 주장이라고도 생각되었지만, 이렇게 본인이 믿는 점을 강한 확신으로 주장하고 책을 통해 주변을 설득하는 모습은 저도 그를 지지하고 싶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는 저자가 조심스럽게 본인과 가족들이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얘기해줍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이다 보니 저자는 ‘절대 완벽하게 검증된 방법들이 아니니 해야 할 의무도 아니고 옳다는 것도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면서 말을 해줍니다.
- 나는 매일 아침 NMN 1g과 레스베라트롤 1g(직접 만든 요구르트에 섞어서), 메트포르민 1g을 먹는다.
- 나는 매일 비타민 D와 비타민 K2의 하루 권장 복용량과 아스피린 83mg을 먹는다.
- 나는 설탕, 빵, 파스타를 최대한 적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40세부터 후식을 끊었다. 비록 슬쩍 맛보기는 하지만.
- 나는 하루에 한 끼를 건너뛰거나 적어도 정말로 적게 먹으려고 애쓴다. 사실 일정이 너무 바빠서 일주일 중 점심을 거르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긴 하지만.
- 몇 달마다 채혈 간호사가 집으로 와서 피를 뽑는다. 수십 가지 생체표지 검사를 하기 위해서다.
- 나는 매일 많이 걷고 계단을 오르려고 애쓰며, 거의 주말마다 체육관에 간다. 역기를 들고, 좀 뛰고, 사우나를 한 뒤에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근다.
- 나는 채소를 많이 먹고 다른 포유동물을 먹는 것을 피하려 애쓴다. 맛이 좋기는 하지만 운동을 한다면 고기를 먹을 것이다.
-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플라스틱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것, 지나친 자외선 노출, 엑스선, CT 촬영을 피하려고 애쓴다.
- 낮에 그리고 밤에 잘 때 시원한 환경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 체중이나 체질량지수가 건강수명의 최적 범위(내 최적 지수는 23~25)에 놓이도록 노력한다.
나가며
역시 독서의 매력은 책을 펼칠 때 기대했던 것과 다른 무언가를 더 배우거나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이 책도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먹을 영양제에 대한 확신을 얻을 목적이었지만 책을 다 읽고 보니 노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주변 사람들에게 더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고 어떤 걸 챙겨 먹으면 좋다는 얘기를 할 때 더 설득력 있게 할 수 있을지 등 기대한 것보다 많은 것을 얻어갑니다. 일단 저는 저자가 먹는다는 몇 가지 영양제를 한번 먹어 보려 합니다. 이를 통해 더욱 활력을 얻게 된다면 제 주변 사람들에게도 추천해서 오랫동안 다 함께 즐겁고 풍요로운 인생을 만들 수 있도록 제가 미미하지만, 중요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어떤 목적에서든 ‘노화’에 대한 유전학적 접근을 자세히 살펴보고 내 삶에도 적용해 볼 만한 방법들을 찾으시는 분들께 한 번쯤 읽어보길 추천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