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를 읽고

book review right wrong

들어가며

지인과 서로 최근 어떤 책을 읽고 있냐는 질문을 주고받다가 <무엇이 옳은가>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이 책에 대해 짧게 설명해주셨지만 단번에 읽어봐야겠다고 느꼈던 이유는 제가 최근에 많이 했던 고민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의 요즘 관심사는 인공지능, 블록체인, 암호화폐, 사모펀드, 벤처투자와 같은 분야입니다. 이 업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듣다보면 내 생각에 옳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그런 문제들에 대한 옳지 않은 해결책들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계속 하다보니 문득 스스로가 옳고 그름에 대해 너무 고집스러워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스러움이 굳어질수록 그것이 곧 늙음과 나이듦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꽤나 진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집스러움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기대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 하이라이트

이 책은 시대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의 윤리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통계와 사례를 통해 알려줍니다. 각 장마다 제가 하이라이트 해둔 내용 중에서도 강력한 질문이나 생각거리가 될 만한 내용들을 인용구로 아래와 같이 가져와보았고 제 생각도 중간 중간 추가해보았습니다.

1장. 인간을 다시 설계하는 것은 옳은가

성 정체성을 차별하는 것은 왼손잡이를 차별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라면 서로 다른 문화의 나라에 따라 동성애자 비율이 달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 세계를 놓고 보면 각 지역의 인구수에 따라 고르게 분포한다.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우리가 인간의 재설계를 바라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인간이 특이하게도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80억 명 가까운 전 세계 사람들의 유전자가 거의 동일할 정도로 차이가 미미한 것은, 머지않은 과거에 인간이라는 생물종은 거의 도태될 뻔했는데, 서른 개가 넘던 우리의 친족 종들 중 단 한 종이 살아남았고, 그게 우리다. 유일하게 생존한 아프리카 어머니를 단일 조상으로 둔 후손들인 것이다. 따라서 극적으로 위험한 전염병에 취약하기 때문에 언제든 멸종할 수 있는 것이다. 단일한 종이 이처럼 거대한 개체수를 가진 데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저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이후로,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오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 많은 부분 우리가 생물로서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규율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종교에서 음식을 제한하는 것이나 동성동본 결혼을 제한하는 등의 규율은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했던 규칙이었던 것입니다.

2장. 기술이 윤리를 바꾸는 것은 옳은가

풍요는 잠재적으로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타인에게 관대해지고 윤리적으로 행동하게 할 뿐 아니라 공중도덕의식을 갖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배를 곯거나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관대해질 수 있다.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의 총량이 많은 덕분이다.
(IT) 기술 덕분에 우리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또 입증하는 일이 빠르게 이뤄지자 오히려 의도적인 허위정보와 거짓말이 우리를 홍수처럼 덮고 있다. 기술은 진실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점을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커다란 거짓말 속에는 언제나 일정한 신뢰성의 힘이 담겨 있다. 대중의 마음은 원시적인 단순성에 사려잡혀 있으며, 대중은 사소한 거짓말보다는 큰 거짓말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사소한 거짓말은 자주 하지만 큰 거짓말을 하는 것에는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큰 거짓말을 지어내겠다는 생각은 대중의 머릿속에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들 역시 진실을 그토록 거대하게 왜곡할 정도로 뻔뻔스러울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히틀러가 거짓말에 대해 설명한 내용은 참 무섭지만 사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굳이 사회와 대중까지 확장하지 않더라도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3장. 어제의 세계는 지금도 옳은가

우리는 그토록 많은 이가 그 끔찍한 노예 관행에 동참하고 그것을 보호하며 또 널리 퍼뜨렸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훗날 후손들이 완전히 비도덕적인 관행이라 비난할 일들을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묵인하고 있다는 걸 모를 것이다.
노예제도의 역사는 사회에서 합법적인 것으로 용인되는 윤리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뀔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극단적 예다. 새롭게 등장한 기술들은 우리에게 여러 선택권을 주고, 그에 따라 우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 혹은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 사람’ 이라 여겨온 이들을 한층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포용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깨우침의 아침은 서서히 밝아온다.

책에서는 노예 관행에 대한 사람들의 윤리 의식 변화를 설명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에서 노예 제도가 먼저 없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과 윤리가 함께 동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때 수녀였던 종교학자 캐런 암스트롱이 종교 역사가로 살았던 평생 동안 전 세계 종교들의 공통성에 초점을 맞췄고, 또 모든 중요 종교들은 다음과 같은 단 하나의 교리를 토대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종교와 윤리, 영적 전통의 중심에는 연민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이들로부터 대접받기를 원하는 그 방식 그대로 항상 다른 이를 대접하라는 것이다."

4장. SNS 속 무제한 자유는 옳은가

개인 정보가 더 공개되면서 우리는 더 개방적이고 너그러운 사회가 될까, 아니면 더 엄격한 도덕적 판단이 지배하는 구속적인 사회가 될까.

5장. 지금의 사회구조 시스템은 옳은가

보몰의 비용 병폐 이론: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생산성은 거의 제자리이지만 비용은 꾸준하게 오르는 분야 (예: 음악가, 보건 분야 종사자, 공립학교 서비스)
감옥 서비스는 돈이 된다. 지역 보안관들은 주 정부로부터 재소자 1명당 매일 25달러를 받는다. 몇몇 통신업체는 교도소 재소자를 상대로 30분 통화에 25달러나 되는 바가지 통화료를 부과하기도 한다. 1880년과 1904년 사이 앨라배마주 정부는 재소자들을 임대해서(용역을 제공해주고)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많게는 예산의 10퍼센트까지 충당했다.

6장. 당신의 '옳은' 은 모두 틀렸다

모노폴리 게임을 통해 조작된 자본주의적 게임을 대상으로 한 행동경제학자의 연구를 통해, 평균적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일수록 마치 자신이 대단 한 인물이라도 된듯 자아도취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여러 자원을 애초에 많이 갖고 시작한 플레이어가 자기는 애초부터 그런 자격을 가지는 것이 당연했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많은 경우 덜 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책에서는 위 결과를 현재의 불법 이민과 관련한 문제와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고 주어진 국적, 부모, 환경에 대해서 나도 자아도취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심을 가지게 해준 구문이었습니다.

과도한 절차가 죽음을 부른다. - FDA에서 안전에만 초점을 맞춘 사람은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는 좋은 놈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좋은 놈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라임병 백신은 2종류가 있었고 효과는 76~92퍼센트였다. 그리고 심각한 부작용 또한 전혀 없었다. 하지만 백신 접종 거부자들과 수익 부족 문제 때문에 두 제품 모두 3년 만에 사장됐고, 그 이후 매년 30만 명이 라임병에 걸렸다.

이 부분을 읽으며 순간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세상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고 이런 문제들은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특히 와 닿았습니다. 기술과 과학의 발달은 개인이 아닌 인류가 함께 축적한 지식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한 명의 천재보다도 사회 전체가 윤리적으로 옳은 것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하는 필요성을 이 예시를 통해 더욱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실수나 성급한 행동 혹은 관리의 부재 등에 따른 비용은 쉽게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고 보류한 것이나 전혀 개발되지 않은 어떤 것의 비용을 측정하기란 한층 어렵다.

저는 위의 문구에 정말 동의하면서 예전에 <블랙스완> 책에서 읽은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습니다. 대중은 어떤 문제를 해결한 사람을 높이 생각하지만 그 문제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한 사람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그 책에서는 911 테러가 발생한 뒤 수습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치적 스타들이 나타났지만 만약에 911 테러 직전에 테러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든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은 지금 우리 사회의 영웅이 되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었습니다. 예방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가 더 성숙한 사회라는 꺠달음이 있었습니다.

7장. 그래서 ... 결론은?

공포는 흔히 잔인함을 부추긴다. 공포에 휩싸인 상태에선 과거의 사건에 대해,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 혹은 빠르게 바뀌는 변화에 대해 너그럽게 마음을 열기가 어렵다.
지금 당장 유일하게 확신하는 한 가지는 내가 모든 해답을 다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맥락 안에서 그 사람들을 이해할 때에는 관용심을 가지되, 지금도 만약 노예를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18세기 노예 소유주들을 판단할 때와 동일한 방식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 그만큼 더 철저하고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전쟁 중 죽음의 수용소에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감시병이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론 상당히 인간적인 감시병들도 물론 있었다.

위 문구를 보면서 언젠가 지인이 저에게 역사책을 볼 때에 재미있는 점에 대해 이야기해준 게 떠올랐습니다. 역사에서 포격에 다리가 무너지고 야밤에 기습을 당하는 큼직한 사건들만 있는 게 아니라, 특정 한 개인만 확대(zoom in)해서 하루 일과를 상상해보면 밥도 먹고 아이도 낳고 친구와 싸우기도 하고 상대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일들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처럼 윤리도 각도와 맥락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겸손' 이 필요한 것 아닐까 합니다.

저자는 재밌는 질문을 던진다. - 당신의 갓난아기를 급하게 맡겨야 하는데 선택할 수 있는 베이비시터가 딱 2명이 있다. 오바마와 트럼프이다.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저자의 이러한 질문이 저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좋은 덕목을 갖춘 사람이 누구인지는 생각보다 상식적인 선에서 판단할 수 있구나 느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선 특정 시대의 법률이나 종교적인 잣대에 얽매이지 말자. 대신 수수함, 관대함, 공감, 공손함, 겸손함, 연민, 예의 바름, 진실함 등의 여러 핵심 원리를 가운데 놓고 판단하자.

나가며

이 책은 저자가 어떠한 결론을 내기 위해 짜임새있게 쓴 책은 아닙니다. 대신에 독자들에게 메세지를 전하고 변화를 요구하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담긴 책입니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 매 장마다 저자가 질문은 던지고 이런 저런 통계와 사실들을 말해주지만, 장을 마무리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없어 제 머릿속에 이 책의 내용이 구조화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이 책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따뜻한 책이라는 겁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모한 확신이 아니라 '겸손' 이라는 메세지가 책장을 넘겨갈수록 더 와 닿았습니다. 중간 중간 저자의 재치있는 농담은 '그러게 이건 윤리적으로 옳을까' 하며 고민하던 나의 긴장된 미간을 한번씩 쉴 수 있게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저에게 선물해준 좋은 사고 방식 중 하나는, 현 시점의 어떠한 윤리적인 쟁점에 대해 생각해볼 때 "나의 손주 세대는 이 상황을 보고 어떤 평가를 할까" 라는 질문입니다. 리더의 중요한 덕목에 자기객관화가 있듯이, 빠르게 변화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세대를 거슬러 생각해보는 세대객관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종합적으로, 제가 -들어가며-에서 밝힌 것처럼 고집스러워지는 스스로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면 여름 휴가를 기회삼아 읽기에 추천하는 책입니다.

Minyoung

Minyoung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