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프래질>을 읽고

들어가며
<블랙스완>으로 알게 된 나심 탈레브라는 저자의 후속작으로 <안티프래질>이라는 책을 알게 된지 몇 년이 지났습니다. 머릿속에만 넣어두다가,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이라는 책의 캐치프라이즈가 지금과 같은 투자, 사업, 일상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을 알려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직접 받아보기 전까지는 이 책이 본문만 66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무시한 책🫠일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블랙스완>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나심 탈레브의 말은 저에게는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스타일 입니다. 하나 하나 다 이해하려고 하다보면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고 스트레스만 쌓여, 하고자 하는 메세지 정도만 파악하고 세부적인 예시나 설명은 주르륵 글자 구경만 하고 넘어간 부분도 있습니다.
책에 대하여
이 책은 결국 '안티프래질'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정의하고 독자가 안티프래질이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해보길 바라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안티프래질을 이해하면 책을 절반 정도 읽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안티프래질과 프래질을 쉽게 비교해보면, 충격(스트레스)이 가해졌을 때 더 강해지면 '안티프래질', 무너지고 없어지면 '프래질' 입니다.
안티프래질이란?
안티프래질이라는 프레임을 저자는 여러 예시와 각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예시와 설명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제가 안티프래질을 이해할 때 도움되었던 키워드들을 추려서 아래와 같이 도식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안티프래질을 고의적으로 피하다보면 결국 프래질해질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자연적으로 파산하고 망해야할 부실한 금융 시스템이 구제 금융이라는 고의적인 중재 때문에 납세자의 비용으로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나중에는 더 큰 피해를 만드는 프래질한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자연선택 원칙에 따라 경쟁에서 진 것들은 과잉보호하지 않고 내버려둬야 전체 구조가 안티프래질해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냉혹한 원칙이지만, 책을 읽고 있는 평온한 상태의 저로서는 동의가 되는 주장입니다.
경로의존성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은 ‘경로의존성’이 있다는 개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순서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경제에 대입해서 말해보면, 경제가 프래질한 구조인 상태에서 GDP 성장률을 올리는 것은 리스크에 더 취약한 구조가 되기 때문에 의미가 없습니다.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면 GDP 성장률은 쉽게 올라가지만, 이렇게 쌓아올려진 프래질한 경제 구조는 어느 시점엔가 이런 빚 때문에 쉽게 붕괴됩니다.
옵션
책을 통해 도움이 되었던 개념 중 하나로 ‘옵션’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옵션은 어떤 의사결정을 했을 때, 그 결과가 부정적이면 제한적인 손실을 보면서도, 결과가 긍정적이면 무제한적인 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 ‘비대칭성’에서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옵션 성격을 띄는 선택들을 통해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옵션이 잘못 사용되어 전체 시스템을 프래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대리인 경영이나 정치에서는 '무료 옵션'을 얻어 잘 되었을 때 이득은 취하지만 잘 안되었을 때 책임을 지거나 손실을 감당하지는 않는 구조 때문에 결국 전체에 피해를 주게 됩니다.
윤리
저자는 결론 챕터에 가까워지면서 안티프래질을 설명하는 것을 너머 안티프래질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하는 노력, 안티프래질 관점에서 윤리라는 것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의 핵심 메세지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함무라비 법전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입니다. 어떤 의사결정을 제안하는 사람은 이득이든 손해든 그 결과를 함께 책임지도록 본인도 판 돈을 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판 돈은 걸지 않으면서 의견만 내는 사람을 저자는 매우 비판합니다.
이를 저자는 '승부의 책임'으로 표현합니다. 희생과 명예는 양 극단에 위치하며 리더들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위치로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전쟁이 났을 때 가장 먼저 타겟이 되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장군, 사령관이 되었고, 마피아 두목도 조직에서 적들의 공격에 가장 많이 노출되고 당국에게 가장 높은 형을 받게 되는 사실을 인정하는 위치였습니다. 저자는 옛날에는 오히려 이런 승부의 책임이 있었는데 현재는 그런 것들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무료 옵션'을 훔쳐가는 월스트리트 은행업자, 대기업 임원, 정치인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 주변에 훌륭한 사람들을 둔다면, 승부의 책임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이 생각의 연장선으로, 어떤 사람이 사후적으로 하는 말이나 의견이 아니라 과거에 실제로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보면 진실을 더 알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나가며
사실 저는 저자 나심 탈레브의 생각을 온전히 다 받아들이기는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어떤 범위까지 고려하냐에 따라 그의 주장과 예시들끼리 서로 모순되게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안티프래질이라는 개념은 어떤 현상을 해석하거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할 때 잘 쓰면 좋은 도구와 같습니다. 필요에 따라 쓸 수 있는 좋은 도구를 이번 독서를 통해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흔히 빠질 수 있는 인지 오류(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로 착각하는 사례, 칠면조 문제 등)는 계속 생각 한 켠에 담아두고 필요할 때 생각나길 바라는 지점입니다.